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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문송’, 일본에선 ‘인정’받는다”…2030 남성, 일본행 러시

치열한 스펙 경쟁 대신 워라밸과 인간관계 중시한 선택
일본 내 한국 남성 취업자 꾸준히 증가, 결혼 흐름도 변화
전문가 “단순한 탈출이 아닌, 삶의 방식 재정의한 세대 현상”
사진=유토이미지

“한국에서의 스펙 경쟁은 끝이 없어요. 하지만 일본에선 노력하면 그만큼 평가받습니다.”
서울 출신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지난해 일본 도쿄의 전자기기 무역사로 이직했다. 토익 900점, 4년제 대학 졸업, 자격증 세 개. 흔히 ‘괜찮은 스펙’이라 불리지만, 한국에서 그를 반겨준 기업은 많지 않았다. “힘들게 합격해도 주말도, 퇴근도 없었어요. 일본에 와 보니 ‘사는 법’이 달라졌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취업과 정착을 선택하는 한국 남성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한국인 근로자는 2020년 6만9000명에서 2024년 7만5000명으로 약 8% 늘었다. 이 중 상당수가 20~30대 문과 전공 출신으로, 과열된 스펙 경쟁 대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일본 취업 컨설팅 기업 ‘코렉(KOREC)’의 이지훈 매니저는 “한국에선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자조 섞인 말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통용되지만, 일본 기업들은 학력보다 성실성과 기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며 “문과 청년들이 한국을 떠나는 주된 이유가 바로 그 불균형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호텔업을 전공하고 현재 일본 부동산회사에서 근무 중인 최건우 씨(34)는 취업 스트레스와 조직 문화에 지쳐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급여 수준은 비슷하지만 일본은 근무 외 시간에 간섭이 없다”며 “한국에선 ‘열정’이 강요였다면, 여기선 ‘존중’이 대우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착 후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은 1,176건으로 전년 대비 40% 급증했다. 일본 현지 결혼정보사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한·일 커플 중 ‘일본 거주 한국 남성’ 비중이 30% 가까이 증가했다.

결혼관의 차이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도쿄대 사회문화학과 마츠다 히로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경제적 기반을 갖춰야 결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한 반면, 일본은 맞벌이 문화와 개인 존중이 자리 잡으며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흐름을 단순한 ‘탈한국’ 현상이 아니라, 경제 환경과 문화 차이를 고려한 ‘이동형 생애전략(mobile life strategy)’으로 본다. 사회학자 박유진 박사는 “MZ세대 남성들은 이제 한 나라 안에서 성공을 좇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 국경을 넘는다”며 “한국 남성들이 일본을 선택하는 것은 새로운 의미의 생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취업뿐 아니라 ‘관계’의 이유도 크다. 일본 거주 한국인 남성 중 약 절반이 “일본인 연인이 있다는 점이 일본행 이유였다”고 답했다는 현지 취업플랫폼의 조사도 있다. 언어 교류 앱,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교류가 실제 결혼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 콘텐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 내에서 K-드라마와 K-팝은 ‘성실한 남성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이와 함께 한국 남성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한국에서의 ‘과로와 경쟁’에서 벗어나, 일본에서 ‘균형과 존중’을 찾아 떠나는 이들. 그들의 이동은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구조를 찾아가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2030세대의 새로운 사회적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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