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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정학 리스크, 세계 공급망을 흔들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 강화와 중동·흑해 해상 불안이 물류 흐름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던지다
세계 주요 해상 운송 경로와 전략적 해로(홍해, 수에즈 운하, 호르무즈 해협, 흑해 등)를 나타낸 지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집중되는 핵심 구간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강화되고, 중동과 흑해 지역의 해상 위험이 급증하면서 글로벌 물류망은 다시 한 번 긴장 상태에 놓였다.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계약 조항 보완, 보험 재검토 등 리스크 대응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 10월, 희토류 수출 통제 범위를 확대하며 다섯 종류의 원소와 관련 가공 장비를 새롭게 규제 목록에 추가했다. 이에 따라 수출 기업들은 반드시 정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심사 기준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이 조치는 고성능 자석, 전기차, 항공·방산 등 첨단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을 불러오고 있다. 실제로 통제 강화 이후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량은 약 75% 감소했으며,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생산 일정을 조정하는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희토류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북미와 유럽 내 생산 능력 확대에 나섰고, 일부 제조사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내 정제 기술 개발과 원자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 역시 희토류 기반 전동기 기술의 대체 실험을 서두르며 기술적 자립을 모색 중이다.

한편 중동 지역에서는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이 재점화되면서 홍해 항로의 전쟁위험보험(War Risk) 비용이 급등했다. 보험료 상승은 해상 운임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선사들은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장거리 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리드타임이 늘어나고 물류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등 세계 해운업계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홍해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무역 통로인 만큼, 항로 불안은 국제 공급망 전체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또한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면서 선박 운항 위험이 높아졌다. 보험사들은 고위험 구역을 ‘레드존(Red Zone)’으로 분류해 운항을 제한하거나,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 기항 선박의 보험료는 불과 몇 달 만에 세 배 가까이 급등했으며, 해운사들은 위험 분산을 위해 항로 재편에 나섰다.

흑해 항로 역시 완전히 안정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와 국제기구가 특별 전쟁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통항을 지원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군사적 긴장이 여전히 높아 완전한 정상화는 요원하다. 이로 인해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과 원자재 운송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보험 계약과 운항 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류 기업들의 전략 전환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첫째, 희토류와 같은 전략 자원의 공급망을 다원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주요 기업들은 중국 외 국가와의 계약을 확대하며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둘째, 해상 운송 계약서에는 보험료 분담, 위험 구역 회피, 운항 지연 보상 조항 등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셋째, 공급망 전반에 걸쳐 재고 완충량을 늘리고, 지역별 리스크에 맞춘 복수의 운송 루트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보험사 또한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전쟁보험 보장 범위를 조정하거나, 위험도가 높은 해역에 대한 보험료를 현실화하면서 리스크 부담을 분산하고 있다. 동시에 보험사와 해운사 간 협의체를 통해 운항 안전 기준과 보험 커버리지를 재설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치·지정학 리스크는 단일 사건이 아닌 복합적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자원 통제, 중동의 해상 충돌, 흑해의 전쟁 리스크가 동시에 얽히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유연성과 대응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각국 정부와 물류 기업이 새로운 리스크 관리 체계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향후 글로벌 무역의 안정성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 물류망은 지금, 단순한 효율성보다 복원력과 민첩성이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공급망의 재편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설계하느냐가 향후 생존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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