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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라스트마일 배송을 위해 활용 중인 DHL 화물자전거(카고 바이크) 출처: GOV.UK | 
2025년 글로벌 물류업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는 크라우드소싱형 배송, 즉 크라우드십핑(Crowdshipping)이다. 기존 택배사 중심의 중앙집중형 구조를 벗어나, 일반 시민이 배송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어 도시 곳곳을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전업 배송 기사가 아닌 개인이 자신의 이동 동선을 활용해 소형 화물을 운송하며, 앱 기반의 매칭 시스템과 실시간 추적, 작업 수락·포기 기능을 통해 ‘개인이 곧 물류 거점’이 되는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 도보, 심지어 대중교통까지 활용되는 이 모델은 처리 시설과 대형 차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며, 확장 속도와 비용 절감 측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팬데믹 이후 라스트마일 배송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과 도심 혼잡은 전 세계적으로 큰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이동 경로를 활용해 소규모 패키지를 함께 배송하는 크라우드십핑 방식은 친환경 물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연구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하루 약 1.3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주 스윈번 공대 역시 대중교통과 자동물류함을 결합한 크라우드십핑 모델을 통해 교통 혼잡 완화와 배기가스 저감 모두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입증했다. 환경적 효과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크라우드십핑은 도시 물류 체계 전반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전통적인 물류 체계는 차량, 인력, 시설에 대한 고정비 부담이 컸지만, 크라우드십핑은 이를 가변비로 전환해 수요 급등락을 유연하게 흡수한다. 최근 싱가포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참여자가 스스로 배송 과업을 선택하는 ‘초이스 기반’ 모델을 적용했을 때, 다음날 배송 기준 비용이 최대 16.9%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단가를 낮추는 차원을 넘어, 수요 피크 완화와 차량·인력 투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매장 고객이 직접 배송에 참여하는 P2P 모델을 활용하면 점포 운영 최적화와 배송 단가 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 변화 역시 크라우드십핑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마존은 Amazon Flex를 통해 독립 계약자가 개인 차량으로 패키지를 배송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우버는 Uber Package 서비스를 운영하며 도심 내 초근거리·초단시간 배송을 실험 중이다. 국내에서도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실시간 소규모 배송 수요가 증가하면서, 패키지 락커와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를 결합한 신규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있다. 크라우드십핑은 이제 스타트업을 넘어 글로벌 대기업까지 전략적으로 채택하는 물류 혁신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배송 중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했을 때의 책임 소재, 보험 적용 여부, 개인정보 보호, 보안 문제 등은 플랫폼 신뢰성 확보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참여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임계 참여자 수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참여자의 자발적 동기를 높이기 위해 합리적인 보상 체계, 최적화된 과업 배정, 사전 알림 시스템, 자동물류함 활용 등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법과 제도의 보완 없이는 대규모 확산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정부와 플랫폼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크라우드십핑은 이제 실험 단계를 넘어 글로벌 물류 혁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개인의 이동 경로를 활용한 분산형 배송 네트워크는 비용 절감, 환경 보호, 유연한 서비스 제공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법적 기반과 인센티브 체계, 신뢰성 강화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본격적인 확산은 쉽지 않다. 크라우드십핑은 기존 택배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도심 내 초근거리·초단시간 배송 수요를 흡수하는 보완적 역할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 혁신, 제도적 지원, 소비자 신뢰가 균형 있게 결합될 때 비로소 크라우드십핑은 새로운 도시 물류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