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목표로, 접경 지역에서 수년간 운영돼 온 대북 확성기를 전격 철거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는 군사적 압박 위주의 대응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대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대북 확성기의 역할과 논란
대북 확성기는 남북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심리전을 펼치는 대표적 수단이었다. 남측에서는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내용, 남한의 경제·사회·문화 소식, 대중음악 등을 송출하며 북한 군인과 주민에게 심리적 동요를 유발하려 했다. 과거 북한의 군사 도발이나 핵실험 등 주요 위협이 발생할 때마다 확성기 재가동이 이루어졌고,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남북 갈등의 상징적 장면으로 자주 언급됐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이어진 확성기 방송은 한편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발적인 무력 충돌 위험을 높인다는 비판도 받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확성기 심리전이 실질적인 전략적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고, 남북 모두가 이를 군사적 도발의 명분으로 삼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책 기조 변화와 철거 배경
이번 철거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내세운 ‘대화와 신뢰 회복’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청와대는 “상호 비방과 압박을 줄이고, 대화 재개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과거와 달리 북한의 특정 요구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됐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행보로 평가된다.
군 관계자는 “확성기 철거는 군사적 효용이 크지 않은 반면,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해 왔다”며 “이번 조치는 군사적 안정과 외교적 공간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린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미온적 반응
하지만 북한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이번 조치를 ‘감상적인 행위’라고 평가하며, 이를 대화의 전제나 신뢰의 표시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실질적인 적대 행위 중단 없이는 대화 재개를 논할 수 없다”는 기존의 강경 노선을 유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북한의 반응을 두고, 이번 조치가 단기간 내에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북한이 보다 큰 정치적·군사적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외 반응과 전망
국내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이번 조치에 대해 엇갈린 시각을 보였다.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남북 대화 재개의 물꼬를 트는 과감한 결단”이라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실질적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방적 조치는 안보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국제사회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엔은 이번 조치를 한반도 긴장 완화의 중요한 신호로 해석하며 지지 입장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 역시 “남북 간 대화 재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사적 대비 태세는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였다.
실질적 신뢰 구축이 관건
전문가들은 확성기 철거가 단순한 ‘상징적 제스처’에 그칠지, 아니면 실질적인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 될지는 향후 몇 달간의 외교·군사적 상황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제재 완화 같은 구체적 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박재현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이번 조치는 남측이 신뢰 구축의 공을 먼저 던진 셈”이라며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향후 남북 관계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론
대북 확성기 철거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향한 상징적인 행보이자, 향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잠재적 계기다. 그러나 실질적 진전은 남북 모두가 상호 양보와 현실적인 대화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하다. 지금은 시작일 뿐이며, 이 첫걸음이 미래의 평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