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한국만 유화 제스처? 북한은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한국 군 장병들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대북 확성기 장비를 해체하거나 옮기는 장면
이재명 정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북 유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내보냈지만, 정작 북한은 여전히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정부는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장비를 철거하기로 결정했고, 이 조치는 단순한 물리적 철거를 넘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정치적 신호'로 해석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다.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고, 남측의 조치에 대해 긍정적 평가나 대화 시도조차 없었다. 오히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최근 담화를 통해 “남조선의 움직임은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계산에 불과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태도는, 한국 측이 선제적으로 유화책을 내놓더라도 북한은 이를 전략적으로 무시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기존의 외교 전술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정권 교체 이후 바뀐 대북 기조
이번 조치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대북정책 방향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된다. 윤석열 정부 시절, 한국은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며 확성기 재설치와 한미 연합훈련 확대를 병행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는 감정보다 전략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며, 외교적 유연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은 2025년 7월 중순부터 대북 확성기 장비 해체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했고, 이 조치는 별도의 언론 발표 없이 조용히 추진됐다. 다만, 철거 완료 후 국방부는 "확성기 재설치는 보류되었으며, 현 시점에서는 긴장 완화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간략히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한미 공조보다 남북 간 직접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으며, “단계적인 신뢰 회복 조치”로서 이번 확성기 철거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北의 침묵과 무시 전략… ‘응답 없는 외교’
그러나 북한은 한국 측의 유화적 접근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반응이라기보다, 전략적 무시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2024년 말부터 남측 정부의 체제 변화에 대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또한 확성기 철거 이전에도, 판문점 선언이나 9.19 군사합의 복원 요청에 일체 호응하지 않으며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현재 내부 경제난과 외부 제재 국면 속에서 외교적 마찰보다는 내부 결속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남측의 유화 제스처에도 반응할 여유가 없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평양 내 에너지 부족과 물가 불안정에 대한 보도는 최근 들어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측의 일방적 유화책을 ‘체면을 깎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수동적 대응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은 언제나 대등한 입장을 원한다”며 “남측이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로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향방, ‘조심스러운 낙관’과 냉정한 현실 사이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의 다음 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북 고위급 회담 제안이나, 인도적 지원 확대, 비공식 채널 재가동 등의 방법이 거론되지만, 북한이 일방적인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화를 위한 여지는 언제나 열려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브리핑에서 “북측의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더라도,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확성기 철거는 ‘작은 변화’였지만, 남북관계의 큰 그림에서는 여전히 진전 없는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한반도의 실질적 긴장 완화는 쉽지 않아 보이며, 정권 초기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피하기 어렵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