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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유토이미지 |
“올해 목표: 승진, 자격증 두 개, 몸무게 감량 5kg.” 한때 새해 다이어리 첫 장을 채우던 이런 문장 대신, 이제 MZ 세대의 노트에는 “야근 줄이기, 의미 없는 약속 안 잡기, SNS 비교 스크롤 줄이기” 같은 문장이 더 자주 등장하고 있다. 1년을 꽉 채울 버킷리스트보다, 자기 삶에서 덜어낼 것들을 적는 ‘언두형 새해 리스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언두형 리스트의 핵심은 ‘성과를 더 쌓는 것’이 아니라 ‘소모를 줄이는 것’에 있다. MZ 세대는 취업·경쟁·성과 압박 속에서 이미 할 일을 과하게 떠안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들에게 새해 계획은 더 많은 일을 다짐하는 선언문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요소를 줄이기 위한 정리 목록에 가깝다. 덜 하는 것이야말로 더 오래 버티기 위한 조건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실제로 젊은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올리는 새해 계획에는 ‘퇴근 후 업무 메신저 안 보기’, ‘의미 없는 단톡방 조용히 나가기’, ‘관계 유지용 약속 줄이기’ 같은 문장들이 빠지지 않는다. 야근과 잦은 회식, 의무적인 네트워킹이 삶을 갉아먹는다는 체감이 커지면서, 일과 관계의 강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계획 단계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디지털 사용 습관도 언두 리스트의 주요 항목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SNS 보지 않기”, “자기 전 1시간은 화면 끄기”, “비교만 하는 계정 언팔하기”와 같은 다짐이 많이 등장한다. 타인의 성과와 ‘갓생’ 콘텐츠를 하루 종일 마주하는 환경에서, 비교로 인한 불안과 자존감 하락을 줄이기 위해서다. 스스로를 자극하는 자극제였던 SNS가, 어느 순간 자신을 소모시키는 독이 되었다는 자각이 반영된 선택이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장기적인 피로감과 경기 불안, 취업난이 자리한다. 계획을 많이 세우고 목표를 높게 잡을수록 실패했을 때의 자책감이 커지는 경험을 반복한 세대가, 이제는 처음부터 목표의 양을 줄이면서 자신을 지키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성공’을 향한 질주 대신, ‘무너지지 않을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가치관 전환이다.
전문가들은 언두형 새해 리스트를 두고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새로운 것을 얼마나 많이 시작했는지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내려놓고 비워냈는지가 삶의 질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덜 만나고, 덜 비교하고, 덜 일하는 대신, 남은 에너지를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영역에 쓰려는 선택이 MZ 세대 전반에서 관찰된다.
이들의 새해 첫 페이지는 더 이상 ‘이뤄야 할 것’으로 빽빽하지 않다. 그 대신 ‘이제는 하지 않을 것’들이 조용히 줄지어 서 있다. MZ 세대에게 2026년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낼지가 삶을 결정짓는 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