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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벽’에 막힌 중소물류사, 대형사와 격차 더 벌어진다

자본력과 디지털 역량 차이 심화로 물류업계 양극화 가속… 생태계 균형 흔들릴 우려
출처: FlexQube
글로벌 물류업계는 기술혁신의 속도가 곧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 투자 여력에서 중소물류회사와 대형물류회사 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기술과 자본을 모두 확보한 대형 물류사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의 실시간 물류 관리, 창고 자동화, 자율주행 운송 등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반면, 중소물류사는 여전히 수작업과 엑셀 기반의 업무 체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물류기업의 70% 이상이 디지털화와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대형 다국적 물류사에 집중되어 있다. 보고서는 “기술 투자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경쟁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물류산업 비교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중소 물류사는 데이터 활용과 AI 도입 수준이 대기업보다 현저히 낮고, 조직 구조상 의사결정 속도와 전략적 접근에서도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규모의 차이를 넘어 물류 체계의 효율성과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대형물류회사는 실시간 가시성(visibility)과 자동화된 네트워크 관리 시스템을 통해 공급망 혼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운송 지연·비용 상승·정보 단절에 취약하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항만 혼잡과 운송 차질 등의 위기 상황에서도 대형 물류사들은 IT 인프라를 활용해 대체 경로를 신속히 조정했으나, 중소업체들은 처리 지연과 계약 손실을 겪었다는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격차를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로 규정한다. 물류업의 본질이 기술 집약 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기술 투자 능력의 유무가 시장 생존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조직 규모와 디지털화 수준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IT 인프라의 유연성이 부족한 기업일수록 장기 성장성에 제약이 생긴다고 분석된다.

하지만 기술 투자 격차는 단순히 중소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장의 불균형이 심화되면 산업 전체의 경쟁 구조가 왜곡되고, 소규모 운송사와 지역 기반 물류업체의 생태계가 약화된다. 공급망의 다층성이 무너질 경우 특정 대형 물류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대형사의 기술 혁신이 산업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중소물류사의 생존 공간을 좁히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협회의 정책적 지원, 공용 물류 플랫폼 구축, 공동 투자형 자동화 인프라 등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특히 중소물류사가 자체적으로 디지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민간 협력 기반의 기술 지원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술력의 격차가 곧 산업의 격차로 이어지는 지금, 물류업계의 양극화를 완화할 균형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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