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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Reuters / Tesla logistics feature |
2025년 하반기, 미국–멕시코 국경은 한동안 ‘니어쇼어링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러나 7월 31일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글로벌 물류 대기업 DSV가 미·멕시코 국경 인근의 물류 인프라 투자 계획을 일부 보류하며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확대 일변도로 이어졌던 국경 물류망 구축이 갑작스럽게 제동이 걸리면서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DSV의 결정은 단순한 투자 조정이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간 교역 환경의 급변을 반영한다. 최근 미국 정부가 멕시코산 철강, 자동차 등 주요 산업 품목에 대해 관세 강화 정책을 검토하면서 양국 간 교역의 예측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 교역량의 가시성이 낮아지고, 물류비와 세금 부담이 동시에 커지자 글로벌 물류사들은 당분간 대규모 확장보다는 현상 유지와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니어쇼어링 열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멕시코는 여전히 미국과의 지리적 인접성,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 USMCA 협정에 따른 관세 혜택 등으로 인해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DSV 사례는 ‘확장의 속도’가 정책 환경에 따라 얼마나 민감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처럼 빠른 확장을 전제로 한 투자보다는 단계적 집행과 조건부 투자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업계에서는 ‘정책 캘린더’가 투자 시점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부상했다. 관세 연장이나 면제 결정의 타이밍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많은 물류사들은 착공 시점과 리스 계약을 유연하게 조정하며 대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기업이 멕시코 대신 미국 남부나 캐나다 지역으로 생산 및 물류 허브를 다변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니어쇼어링 전략도 질적인 전환기에 들어섰다. 대규모 공장 이전보다 통관 절차 자동화나 멀티모달(복합 운송) 시스템 구축, 분산형 창고 운영 등 ‘운영 효율 중심’의 투자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보다는 정책·물류 리스크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변화다.
국제 물류시장의 자금 흐름도 점차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멕시코의 전력망 불안정과 치안 문제, 통관 병목 현상 등을 주시하며 투자 타이밍을 신중히 조정하고 있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북미 내 생산·공급 체인의 자립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여전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보류는 후퇴가 아니라 ‘속도 조절’이며, 불확실한 정책 환경 속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에도 이 흐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북미 시장을 겨냥한 부품 수출이나 조립형 생산 구조를 가진 기업이라면 관세와 통관 절차, 원산지 규정에 대한 대응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부를 아우르는 양방향 거점 확보, 디지털 통관 시스템 활용, 탄력적 운송 네트워크 설계가 향후 필수 과제로 꼽힌다.
결국 2025년 10월의 미국–멕시코 국경은 ‘확장 중단’이 아닌 ‘전략적 재정비’의 현장이다. 관세와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물류 기업들은 속도를 조절하며 새로운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DSV의 보류 결정은 글로벌 공급망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