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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imerco Express Group – December APAC Freight Report |
2025년 10월 국제 물류업계는 단순한 운송비용 이상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주요 교역국이 잇따라 반덤핑(Anti-Dumping)과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 조사를 강화하면서, 수출입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 관리가 새로운 생존 과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흐름은 미·중 무역 갈등의 장기화, 글로벌 공급과잉, 그리고 산업 보조금 경쟁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EU)은 올해 들어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신규 무역방어조사를 개시했다. 유럽위원회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신규 조사 건수는 33건으로, 발효 중인 조치는 199건에 달했다. 철강, 화학, 배터리 소재 등 핵심 산업 전반에서 조사 대상이 확대되었으며, 일부 품목은 2025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세율 부과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5년 4월에는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부식방지강판(CORE) 반덤핑 사건에서 예비 긍정 판정을 내렸고, 현재 최종 판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한 6월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대상으로 합판(Plywood) 품목에 대한 AD·CVD 동시 조사를 개시했다. 사건별로 10월~12월 예비 및 최종 결정 일정이 이미 공지되어 있어, 수출기업의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캐나다 국경서비스청(CBSA)도 PET 수지, 열감지지(thermal paper), 주철 배수관, 탄소·합금강선 등 다수 품목에 대한 신규 조사를 발표했다. 예비 판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통관 시 현금예치금 또는 보증 부담이 늘고 있다. CBSA는 최근 반회피(circumvention) 가이드라인까지 강화해, 제3국 경유 수출이나 경미한 가공 후 재수출 사례도 별도의 조사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단순한 보호무역주의를 넘어, 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한 구조적 경쟁의 신호로 본다. 특히 철강·화학 분야의 공급과잉, 주요국의 보조금 확대, 그리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각국 정부가 무역방어도구(TDI: Trade Defense Instruments)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물류 현장에서는 이 여파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비 긍정 판정이 내려진 품목의 경우, 통관 단계에서 현금예치 또는 보증 의무가 발생하며, 수출기업은 개별 덤핑률·보조금률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 가격·원가 데이터를 요구받는 경우도 많아 통관 지연이 불가피하다. 또한 제3국 경유 가공을 통한 우회 수출은 반회피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단순 노선 변경으로는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
국내 기업의 대응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포워더와 수출입 기업들은 자사 품목의 HS 코드와 사건별 제품 정의를 대조해 노출 여부를 점검하고, 선적 계약서에 관세·예치금 귀속 조항을 명시하는 등 리스크 헤지에 나서고 있다. 미국·EU·캐나다의 사건별 일정표를 참고해 발표일 이후 선적분부터 세율이 적용되는 점을 감안, 출하 일정을 조정하는 사례도 늘었다.
다만 전 세계 반덤핑·상계조사 총건수를 실시간으로 비교하기는 아직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공식 통계는 각 회원국이 반기 단위로 보고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업데이트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요 3대 지역(EU, 미국, 캐나다)의 공식 자료만 봐도, 2024년 이후 조사 개시 빈도와 품목 범위가 뚜렷이 확대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2025년 하반기 글로벌 무역 환경의 핵심 키워드는 ‘방어적 보호’다. 반덤핑과 수출규제는 더 이상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운영비용과 물류 효율성을 좌우하는 구조적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수출입 기업들은 제품 정의, 원산지 관리, 가격 기록, 선적 일정, 계약 조항 등 다층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비용과 지연의 파고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