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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Rotterdam Shortsea Terminals (RST), “At the heart of Europe’s no.1 port” |
2025년 10월, 세계 물류업계의 중심 화두는 회복탄력성과 다변화다. 코로나19 이후의 공급망 혼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홍해를 둘러싼 분쟁, 그리고 미·중 무역 갈등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하나의 루트나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WTO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상품 무역 증가율은 2.4%로 상향 조정되었으나, 이는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이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프론트로딩(Front-loading)’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미국의 교역 구조는 눈에 띄게 재편되고 있다. 멕시코가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확고히 하면서, 생산 거점을 정치적으로 안정된 우방국으로 옮기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본격화되고 있다. IMF와 OECD는 이러한 무역의 분절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운송 분야에서는 ‘모드 중립(mode-neutral)’ 전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해운, 항공, 철송, 내륙 운송 등 다양한 운송 모드를 조합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접근이다. 홍해 긴장으로 수에즈 운하 항로가 불안정해지자 유럽행 선박들이 희망봉을 우회하는 사례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항해 거리가 늘고 연료비는 약 4~5% 상승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시간보다 확실성을 택하고 있다. 반면 파나마 운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25회계연도 기준 통과 선박은 전년 대비 19.3% 증가했고, 매출 또한 14% 이상 늘었다. 운하청은 10월 5일부터 예약 시간을 연장하고 친환경 ‘넷제로(NetZero)’ 슬롯제를 도입해 운항 효율성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항공화물 시장은 수요가 전년 대비 3~4% 증가했으나 신조 화물기 인도 지연으로 용량 부족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중유럽 철송 노선은 홍해 대체 루트로 일시적 활기를 띠었으나, 상반기 기준 물동량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하며 한계를 드러냈다.
정책 리스크와 재고 전략 역시 산업 전반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WTO는 기업들이 관세나 정책 변화에 대비해 사전에 물량을 확보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수요 왜곡을 일으키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불가피한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물류기업들은 단순 운임 경쟁보다 비상계획과 재고 복원력 확보를 우선시하는 추세다. OECD는 올해 6월 발표한 「Supply Chain Resilience Review」에서 무역의존도 완화, 친환경 물류 인프라 투자, 디지털 통합 관리체계를 정책 차원의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IMF 또한 공급망 다변화가 충격 완화에 실질적 효과가 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했으며, 세계은행은 ‘글로벌 공급망 스트레스 지수(GSCSI)’를 도입해 각국의 복원력 정책과 금융 지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변화는 예외가 아니다. IMF가 2025년 발표한 「Korea in a Changing Global Trade Landscape」 보고서는 미·중 기술 갈등 속에서 한국의 수출과 해외 직접투자가 상반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터리, 반도체, 전기차 핵심 소재 등 고부가 제조업의 리쇼어링 압력이 커지면서 정부와 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 재배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결국 2025년의 글로벌 물류는 예측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 전략적 유연성의 시대에 들어섰다. 운송수단, 국가, 공급처를 분산하고 재고와 통관, 운항의 불확실성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것이 기업 생존의 핵심이 되었다. 인공지능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의 판단과 물류 설계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