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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신 로봇이 트럭을 비운다…물류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물류의 최후 난제, ‘트럭 언로드’가 무너진다
AI와 로봇이 바꿔놓은 하역 자동화의 현실
트럭 한 대의 화물칸이 창고 앞에 도착한다. 예전 같았으면 작업자 2~3명이 수 시간에 걸쳐 상자를 옮겼을 장면이다. 그러나 이제는 로봇 한 대가 기계 팔을 뻗어 상자를 집고, 스스로 경로를 계산해 바닥에 정리한다. 더 이상 상상 속 장면이 아니다.

지금 물류 현장에서는 이른바 ‘트럭 상·하차 자동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자동화가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던 이 작업마저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창고 자동화의 성배(The Holy Grail of Automation)”라 표현하며, 물류 혁신의 최종 관문이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럭 언로드, 자동화의 최후 관문

그동안 물류 자동화는 주로 픽업, 분류, 포장처럼 비교적 정형화된 작업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트럭 내부는 구조가 불규칙하고, 화물의 모양과 무게가 다양하며, 조명이 어두운 경우도 많아 자동화 적용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물류 업계에서는 트럭 내부 상하차를 자동화의 ‘최후의 영역’으로 불러왔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앰비 로보틱스(Ambi Robotics) 등 선도 기술 기업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목표는 분명하다. “사람 없이도 트럭 한 대를 완전히 비울 수 있는 로봇을 만들자.”


현장에 투입된 상용 로봇: Stretch와 AmbiStack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자동 하역 로봇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Stretch’다. 이 로봇은 7축 로봇팔에 진공 흡착 그리퍼를 장착하고 있으며, 3D 카메라와 인공지능을 통해 상자의 위치와 무게 중심을 파악해 들어 올린다.

시간당 약 580개의 상자를 처리할 수 있으며, 이는 일반 작업자 2명분의 작업 속도에 해당한다. 글로벌 물류기업 DHL은 이미 7대를 현장에 투입했으며, 추가로 1,000대를 도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UPS, 페덱스(FedEx), 월마트(Walmart) 등도 도입 확대를 검토 중이다.

한편, 앰비 로보틱스의 ‘AmbiStack’은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비디오 게임 엔진을 활용해 로봇에게 다양한 화물 적재 상황을 학습시킨 후, 이를 바탕으로 실제 트럭 안에서 ‘3차원 테트리스’를 하듯 최적의 순서로 상하차를 수행한다. 상자의 부피, 질감, 균형 등을 고려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동작을 스스로 계산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물류 로봇 ‘Stretch’가 실제 창고 현장에서 트럭 내부 화물을 자동으로 하역하고 있는 모습. 트럭 상·하차 자동화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다.

AI·센서·시뮬레이션이 결합된 고도화된 기술

이러한 로봇들의 핵심은 단순한 기계 동작을 넘어선 ‘인지 기반 자동화’에 있다. Stretch는 고해상도 비전 센서와 AI 알고리즘을 결합해 장애물을 회피하고 동선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한다. Ambi Robotics는 3D 포인트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상자의 찌그러짐이나 경사까지 인식하며, 그에 맞춰 대응 동작을 바꾼다.

물류 전문가들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던 일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다”며, 인간의 직관이 기술로 대체되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성과와 ROI, 그리고 넘어야 할 한계

상하차 로봇 도입은 생산성 향상과 작업자 안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뚜렷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Stretch는 작업 속도를 약 2배 끌어올렸고, 반복적인 무거운 작업에서 오는 부상 위험도 크게 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투자 비용이 높지만, 많은 기업들이 약 2년 내 투자 회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계도 존재한다. 비정형 포장물이나 얇은 포장재, 라벨이 없는 상자 등은 로봇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트럭 내부의 경사나 미끄러운 바닥, 좁은 공간 역시 자동화 효율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소 물류업체에게는 초기 투자비용과 전용 설비 공간 확보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자동화가 일자리를 대체할까?

로봇 도입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DHL 북미법인은 “작업자들이 단순 하역 작업에서 벗어나 로봇을 관리하고 유지보수하는 역할로 전환되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 반복 노동에서 탈피해 사람은 고부가가치 작업에 집중하고, 로봇은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맡는 구조로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노동의 질 향상과 산업 구조 재편을 동시에 가져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자동화의 다음 단계는 어디인가

전문가들은 트럭 상·하차 자동화를 포함한 물류 자동화 기술이 앞으로 더욱 정교하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야간에도 인력 없이 운영이 가능한 ‘무인 자동 하역 시스템’이 상용화되고,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장애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AI 기반 안전 예측 시스템’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역할을 나누며 함께 작업하는 ‘로봇-인간 협업형 물류 모델’이 주요 구조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협업 방식은 자동화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작업자의 안전과 노동 가치를 함께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트럭 안까지 침투한 자동화의 물결

지금 물류 업계는 인간과 로봇이 함께 트럭을 비우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한 대의 트럭을 비우는 문제가 아니라, 미래 물류의 표준이 무엇이 될지를 가늠하게 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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