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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바꾼 전염병 지도, 모기가 옮기는 질병의 확산

2025년, 뎅기열과 말라리아 등 벡터매개질환이 지구촌을 뒤흔들다
출처: Habibur Rahman / Xinhua.
2025년 들어 전 세계 보건 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전염병 중 하나는 모기와 같은 곤충이 옮기는 벡터매개질환이다. 기후변화로 고온과 강우 패턴이 바뀌면서 모기 서식지가 넓어지고 활동 기간이 길어지자, 뎅기열과 말라리아, 웨스트나일바이러스(WNV) 같은 질병이 과거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 확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보고서에서 “기후변화·도시화·국제 이동성이 뎅기 위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주 대륙은 2024년에만 1,300만 건 이상의 뎅기열과 8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며 사상 최악의 유행을 겪었다. 2025년 들어서는 확산세가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높다. 9월 현재 미주 지역 누적 환자는 약 377만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68% 줄었지만, 최근 5년 평균보다 10% 이상 많아 “정상 범위를 웃도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태평양 도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사모아 보건부는 9월 중순까지 4천 건이 넘는 확진 사례를 보고했고, 이 중 70% 이상이 어린이였다. 영국 보건안전청도 1월부터 8월까지 사모아에서만 1만 2천 건 이상의 임상 사례와 6명의 사망자를 집계했다. WHO 서태평양사무소는 “여러 도서국에서 대규모 유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럽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토착 모기 종과 함께 아시아 원산 얼룩날개모기(Aedes albopictus)가 지중해와 남유럽 전역에 자리 잡으며 뎅기열과 치쿤구니야의 토착 발생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미 웨스트나일바이러스는 현실화됐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 따르면 9월 초까지 유럽 9개국에서 토착 감염 652건이 보고됐고, 이탈리아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확산의 배경에 기후 요인이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1995~2014년 아시아·미주 21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위적 온난화로 인한 고온이 연간 뎅기 발생의 약 18%를 설명한다고 밝혔다. 또한 205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 따라 49~76%까지 추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는 예측 모델에 근거한 추정치이지만, 기후변화가 벡터 질환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라리아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기존 아프리카·남아시아에서 벗어나 도시형 말라리아 매개 모기인 Anopheles stephensi의 서식지가 중동과 아프리카 대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2025년 발표된 한 연구는 현재 지구 표면의 13%가 이 종의 서식에 적합하며, 전 세계 인구의 40%가 잠재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말라리아 대응에서는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WHO 권고 백신(RTS,S와 R21)이 이미 19개국의 정규 예방접종 일정에 포함되며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접종이 시작됐다.

혁신적 개입도 진행 중이다. 브라질은 2024년 뎅기로 6천 명 넘는 사망자를 기록한 뒤, 2025년 9월 세계 최대 규모의 ‘월바키아 감염 모기’ 바이오팩토리를 가동했다. 이 공장은 매주 1억 개의 알을 생산해 향후 수년간 1억 4천만 명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미국과 유럽에서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 감시가 한창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9월 중순까지 인체 감염 40여 건이 보고됐으며, 유럽에서는 더운 여름과 늦게 찾아온 가을이 토착 사례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2025년의 경험은 기후변화가 단순히 기온 상승에 그치지 않고, 전염병의 지형을 바꾸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벡터 질환은 특정 계절·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하는 추세다. 보건 전문가들은 연중 상시적인 모기 감시, 백신 접종 확대, 친환경적 방제 기술 도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 위기 시대, 모기는 단순한 여름의 불청객이 아니라 인류 보건의 중대한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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