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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원 박사. 사진=문화일보 |
저속노화연구소 대표 정희원 박사가 자신을 성범죄 피고소인으로 맞고소한 전 연구원 A씨에게 “살려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측의 스토킹·성추행 공방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스스로를 ‘스토킹과 공갈미수 피해자’라고 주장해 온 정 대표가 맞고소 직후 상대에게 사실상 사과와 호소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에서 사건의 향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 대표는 A씨가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저작권법 위반, 무고, 명예훼손,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복수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한 19일 저녁 A씨에게 “살려주세요”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이어 같은 날 정 대표는 “10월 20일 일은 정말 후회하고 있다”며 자신이 먼저 스토킹 혐의로 A씨를 신고했던 날짜를 언급한 뒤 “죄송하다”는 취지의 문자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측은 이 같은 문자 내용을 두고 “정 박사가 실제 스토킹과 공갈미수의 피해자라면, 상대방에게 이처럼 구구절절한 사과와 구원을 요청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A씨 측은 “연락금지 요청을 수차례 전달했음에도 정 박사가 A씨와 그 가족들에게 반복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20일 정 대표가 A씨를 스토킹 혐의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정 대표는 고소장에서 “지난 6월 A씨와의 계약 관계를 해지한 뒤 7월부터 A씨의 스토킹이 시작됐다”며, “A씨가 유튜브 스튜디오 등에 찾아와 ‘내가 없으면 너는 파멸할 것’이라 폭언했고, 배우자의 직장과 주거지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씨가 자신의 저서 ‘저속노화 마인드셋’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하며 경제적 이익을 노렸다고 보고, 지난 17일에는 공갈미수 혐의로 A씨를 추가 고소했다. 그는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자신인데, A씨가 부당하게 지분을 요구하며 압박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A씨 측은 19일 정 대표를 상대로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을 비롯해 저작권법 위반, 무고, 명예훼손,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다수 혐의를 서울경찰청에 고소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A씨 측은 “정 박사가 대표이자 상급자의 지위를 내세워 반복적으로 성적인 요구를 했고, 피해자는 해고와 불이익이 두려워 이를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에 몰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저작권을 둘러싼 공방도 첨예하다. A씨 측은 “저서는 실질적으로 공동 연구·기획 결과물에 해당한다”며, 저작인격권과 일부 재산권을 주장하는 반면, 정 대표는 “핵심 콘텐츠와 콘셉트, 집필은 자신이 주도한 만큼 A씨의 요구 자체가 공갈에 가깝다”고 선을 긋고 있다.
현재 정 대표와 A씨가 서로를 상대로 제기한 모든 사건은 서울 방배경찰서에 배당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정 대표를 상대로 한 고소 사건과 관련해 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며, A씨에 대한 피의자 및 고소인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맞고소 직후 정 대표가 보낸 “살려주세요”, “정말 후회하고 있다”, “죄송하다”는 문자가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방어 과정에서 나온 감정적 표현인지, 사실상 자신의 고소 내용 일부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황인지 여부에 따라 양측의 법적 지위와 신뢰도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직장 내 위력 관계와 감정적 갈등, 지적 재산권 문제, 스토킹과 성범죄 의혹이 뒤엉킨 복합 분쟁 양상을 띠고 있다. 양측 모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경찰 수사와 이후 사법 판단을 통해 사실관계가 어떻게 가려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