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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 제공 |
성적이나 소득과 상관없이 ‘산만 꾸준히 타도’ 받을 수 있는 이색 장학금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생겼다. KAIST는 학업·연구에 지친 학생들이 규칙적인 등산을 통해 체력과 성취감을 동시에 높일 수 있도록 ‘미산(彌山) 등산장학금’을 새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번 장학금은 신익산화물터미널 권준하 회장(81)이 5억 원 규모 펀드를 기부하면서 마련됐다. ‘미산’이라는 이름은 권 회장의 선친 호에서 따온 것으로, 가문이 소중히 여겨온 산행의 의미를 장학금 프로그램에 담은 것이다. KAIST 측은 “과학기술 특성상 실험실에 오래 머무는 학생들이 몸을 쓰는 활동을 생활화하도록 돕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선발 기준은 기존 장학금과 뚜렷이 다르다. 학점, 연구 실적, 소득 분위 등은 평가 요소에서 모두 빠졌다. 대신 학생들은 학교가 지정한 등산 코스를 정해진 앱으로 인증하면 된다. 1년 동안 7회 이상 코스를 완주한 학생에게는 70만 원, 4~6회를 채운 학생에게는 30만 원이 지급된다. 학교는 매년 약 150명이 혜택을 보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권 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30년 넘게 장기 간접 투자로 자산을 일군 투자·경영 전문가로, 서울대·숙명여대·원광대병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여러 기관에 지금까지 111억 원 이상을 기부해 온 대표적 개인 기부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산 정상에서 발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 웬만한 고민은 작게 느껴진다”며 “학생들이 책상 앞에서만 싸우지 말고 산을 오르며 호연지기와 생각의 여유를 얻었으면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기부를 두고 권 회장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펀드, 등산, 그리고 기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KAIST는 이 장학금이 학교 최초의 ‘원금 보존형 펀드 기반’ 장학금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5억 원의 원금은 그대로 두고, 연간 약 1억 원 수준의 운용 수익만 장학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여서 기금 소진 걱정 없이 장기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학교 관계자는 “등산 인증 횟수라는 명확한 기준 덕분에 학생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며 “체력 관리와 성취감, 그리고 기부자의 철학이 함께 녹아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장학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