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도 대신 산다” 맛집·술집 줄 서주고 월 500만…새해 밤 달군 ‘줄서기 노동’
    • 홍대·창원·대전까지 “대신 줄 설 사람 구해요”…식당·술집·빵집으로 번진 줄서기 대행
      영하 8도 한파에도 웨이팅 알바 열풍…성수기엔 시급 50% 뛰고, 월수입 500만 사례도
      “시간을 거래비용으로 인식” vs “한정 재화, 돈으로 사는 건 도덕적 논란”
    • 당근 캡쳐사진중앙일보
      당근 캡쳐/사진=중앙일보

      지난해 12월 26일, 한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홍대 술집 줄서기 도와주실 분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오자 3만원의 비용에도 3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글쓴이는 “연말 카운트다운 시간에 맞춰 입장하고 싶다”며 직접 추위 속에 서 있는 대신 줄을 서 줄 사람을 공개 모집했다.

      해가 바뀌던 12월 31일 밤, 영하 8도의 한파에도 서울 홍대 일대는 술집·식당·게임장 앞 웨이팅 줄이 인도까지 가득 메웠다. 이 행렬에는 손님 대신 줄을 서 주는 ‘줄서기 대행 노동자’들도 섞여 있었다. 5년째 줄서기 일을 해온 40대 박모씨는 “고급 호텔 식당, 인기 술집, 디저트 카페 등 줄서기 의뢰가 부쩍 늘었다”며 “월평균 400만~500만원을 벌고, 코로나19 때는 800만원까지 번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줄서기 대행의 무대는 홍대만이 아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상남동 술집 줄서기 5만원에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2007년생인데 자정이 되자마자 입장하고 싶다”, “이성과의 시간을 줄 서느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새벽 시간부터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이나 디저트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를 파는 카페에는 오픈 전부터 대기열이 형성되고, 가게 앞이 아닌 온라인에서 먼저 줄서기 대행자를 찾는 ‘보이지 않는 웨이팅’이 생겨난 셈이다.

      줄서기 대행의 기본 수당은 통상 최저시급(1만320원) 수준에서 시작하지만, 조건에 따라 웃돈이 붙는다. 야외에서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경우나 새해 전야, 크리스마스 같은 성수기에는 시급에 50%가량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줄서기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일부 업체는 “비·눈·한파 등 악조건일수록 ‘시간을 돈으로 사려는’ 수요가 늘어 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현대 소비자의 인식 변화를 꼽는다. 한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예전에는 물건 하나 사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거래비용’으로 계산해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소비자학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과거라면 지인에게 부탁하던 사소한 서비스까지도 공급자와 수요자가 쉽게 매칭된다”며 “술집 줄서기 같은 세분화된 수요도 앞으로 계속 파고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줄서기 노동’의 확산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한 변호사는 “대신 줄을 서는 행위 자체는 현행법상 특별히 문제 되지 않지만, 한정된 재화를 두고 줄을 돈으로 사실상 ‘매입’하는 형태는 공정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도덕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해 줄서기 대행을 하는 행태에 대한 별도 규제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점포가 명시적으로 대행을 금지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줄을 서거나 퇴거 요구에 불응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 번질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점포와 소비자 사이에서는 이미 갈등의 조짐도 나타난다. 인기 디저트나 한정 수량 빵을 판매하는 매장은 “직접 줄 선 손님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다”며 대행 알바를 눈여겨 보고 있고, 정작 오랜 시간 기다린 손님들은 “돈으로 줄을 사는 사람들 때문에 대기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 아니냐”고 토로한다. 반면 줄서기 이용자들은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 위해 합법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인데, 이를 도덕적으로만 문제 삼는 건 시대착오”라고 반박한다.

      줄서기 대행은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기도 하다. 비정기·단건 중심의 일거리, 날씨·시즌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수입 구조, 고용·산재 안전망의 부재 등 기존 배달·대리운전 노동과 비슷한 취약성이 지적된다. 업계에서는 “지금은 소규모 개인 알바 수준이지만, 수요가 더 늘면 다수 인력을 관리하는 ‘줄서기 매니지먼트’ 형태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줄서기 대행 시장을 키우는 힘은 ‘시간에 가격을 매기는 소비자’다. 바쁜 직장인과 MZ세대는 몇 시간의 추위와 지루함 대신 수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을 점점 덜 망설인다. ‘맛집 방문 인증’과 ‘한정판 경험’이 곧 온라인 정체성과 연결되는 시대, 줄을 대신 서 주는 이들의 자리는 생각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한 소비자 정책 전문가는 “줄서기 대행 자체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기보다, 점포의 영업 자유와 소비자들의 선택권,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을 함께 고려한 가이드라인과 자율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돈으로 사고파는 시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그 사이에 어떤 새로운 규범과 충돌이 생길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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