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전통 강자의 추락
닛산은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이 약 161만 대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 줄어든 수치로,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때 ‘알티마’와 ‘엑스트레일’ 같은 글로벌 베스트셀러 모델을 보유하며 도요타, 혼다와 함께 일본 자동차 산업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던 닛산에게는 뼈아픈 결과다.
닛산의 하락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첫째, 전기차 전환 속도가 경쟁사 대비 현저히 느렸다. ‘리프(Leaf)’라는 세계 최초의 대중형 전기차를 출시하며 시장을 선도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후 새로운 전략 모델 부재와 투자 지연으로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둘째,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저 현상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관리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수익성과 점유율 모두에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SUV와 픽업트럭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닛산의 라인업 경쟁력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BYD, 전기차 돌풍으로 약진
반면 중국 BYD는 같은 기간 약 214만 대를 판매하며 전년 대비 무려 33%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로써 글로벌 순위 7위에 올라섰으며, 전통 강자인 닛산을 공식적으로 추월했다.
BYD의 약진은 전기차 시장 확대와 정부 지원 정책, 그리고 자체 배터리 기술력이 맞물린 결과다. BYD는 배터리 제조사로 출발해 전기차에 최적화된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특히 ‘블레이드 배터리’로 불리는 LFP 기반 기술을 통해 안전성과 가격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급형 모델에서 고급 세단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구축해 중국 내수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유럽과 동남아, 중남미 시장에서도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BYD의 성장세가 단순한 단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탄소중립 규제가 강화되고 내연기관 규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기차 전환이 늦은 업체는 점차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세대 교체
닛산의 추락과 BYD의 약진은 단순한 순위 변동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세대 교체’를 상징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독일·미국의 전통 완성차 업체들이 세계 상위권을 독식했지만, 이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산업 구조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변화는 기술력뿐 아니라 국가적 전략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대규모 보조금, 충전 인프라 확충, 내연기관 규제 등으로 시장 성장을 유도했다. 반면 일본은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순수 전기차 전환에서 한발 늦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향후 전망과 과제
향후 전망은 명확하다. 닛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반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라인업 확대를 넘어 배터리 기술, 소프트웨어, 모빌리티 서비스 전반에 걸친 혁신이 필요하다. 이미 도요타와 혼다는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현대차·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도 공격적으로 신차를 내놓고 있다. 닛산이 이 경쟁에서 다시 입지를 회복하려면 빠르고 과감한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
한편 BYD는 기존 중국 내수에 더해 미국과 동남아, 인도 시장 진출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5위권 도약까지 거론된다. 다만 미국과 유럽의 견제, 무역 규제 강화 등은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결론
2025년 상반기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전통 강자와 신흥 세력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 시기였다. 닛산의 위기와 BYD의 부상은 단순히 기업의 성과 차이를 넘어, 자동차 산업의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이제 내연기관 중심의 시대에서 전기차 중심의 시대로 본격 전환되고 있으며, 이 흐름에 얼마나 신속하게 적응하느냐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