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업환경이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향후 기업 이사회와 주주 간의 관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이사회의 의무를 기존의 ‘기업’ 중심에서 ‘주주 전체의 이익’까지 고려하도록 확장했다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이사는 경영 판단을 내릴 때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등 모든 주주의 권익을 아우르도록 ‘이해관계자 고려 의무’가 명문화되었다.
이는 기존의 이사회 운영 원칙이 대주주나 경영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한계를 극복하고, 지배구조 전반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일부 대기업의 경영권 분쟁이나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우회 지배 등으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책임 요건 강화도 포함하고 있다. 이사가 직무를 소홀히 하거나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결정을 내렸을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더 명확히 묻겠다는 취지다. 이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 흐름 속에서 기업의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법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내 기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 온 것이 바로 비효율적인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장치의 미비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으로 기업의 경영 투명성이 제고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이사의 의무와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어 위축된 경영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해당 규정이 자칫 경영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이번 개정은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 환경을 위축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국내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은 법령 공포 이후 유예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은 남은 하반기 동안 내부 규정을 정비하고, 이사회 운영 구조를 새 기준에 맞게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