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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Nautilus Shipping |
국제해사기구(IMO)가 해운업계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제도 개편에 나섰다. 2025년 10월 열린 환경위원회(MEPC) 회의에서 IMO는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과금하고, 배출을 줄인 선박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새로운 과금 체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는 해운업의 탈탄소화를 촉진하기 위한 핵심 조치로, 오는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제도의 골자는 ‘IMO 넷제로 프레임워크(IMO Net-Zero Framework)’다. 지난 4월 승인된 이 초안은 2027년경 발효를 거쳐 2028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IMO는 5,000톤 이상의 대형 선박, 즉 국제 해운 배출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선박을 주요 과금 대상으로 설정했다. 단, 내항 운항선이나 비기계 추진선 등 일부 선박은 적용 제외가 검토되고 있다.
새 체계는 선박 연료의 전 생애주기 배출량(Well-to-Wake)을 평가해 ‘연료 집약도(GHG Fuel Intensity)’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과금하고, 기준 이하로 감축한 경우에는 잉여 단위를 얻어 거래하거나 보정 단위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배출량에 따라 톤당 100달러에서 380달러의 과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수익은 ‘IMO 넷제로 기금(IMO Net-Zero Fund)’에 적립돼 기술 개발, 연료 전환, 개도국 지원 등에 사용된다.
영국 UCL 연구진과 ‘트랜스포트 앤드 인바이런먼트(Transport & Environment)’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시행되면 2028~2030년 사이 매년 약 110억~120억 달러 규모의 자금 흐름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IMO는 이를 통해 친환경 연료 인프라 확충, 에너지 효율화 기술 상용화, 중소 해운사의 전환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을 둘러싼 국제적 갈등도 첨예하다. 미국은 이 제도가 자국 해운업계에 불리하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제도를 지지하는 회원국에 대해 비자 제한이나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면 EU와 유럽 각국은 이를 적극 지지하며, IMO 체계와 유럽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연계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다만, 두 제도 간 중복 과금 문제와 행정 복잡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과금안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목표 감축량이 2030년 기준 약 8%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으며, 과금 단가가 낮을 경우 기술 전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톤당 800달러 이상의 강력한 탄소 가격 설정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또한, 보고·검증 절차가 복잡해 선주와 운항사 모두 행정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O의 과금 제도 도입은 해운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고배출 선박은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지고, 반대로 저탄소 연료나 하이브리드 추진 시스템을 도입한 선박은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해운사들은 신조선 투자, 메탄올·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 채택, 운항 효율 개선 등 다각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IMO 넷제로 기금을 통한 보조금과 인센티브 지원이 본격화되면, 기술 개발과 탈탄소화 프로젝트에 새로운 자금줄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개발도상국의 경우 과금 부담이 커질 수 있어 기금 배분과 기술 지원 문제는 국제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해운과 물류 전반의 산업 구조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사들은 이미 자사 선박의 연료 효율 개선, 전기 추진선 도입, 운항 데이터 기반 배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을 서두르고 있다. 앞으로 IMO 제도가 정식 발효되면, 탄소 효율이 낮은 선박은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MO의 온실가스 과금 체계는 해운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해운은 더 이상 단순한 운송 산업이 아닌, 친환경 기술 경쟁의 장으로 전환될 것이다. 결국 글로벌 물류기업과 선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탈탄소화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