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시장에서 운임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요소다. 제품을 언제, 어디로, 어떤 가격에 운송할 수 있는지는 결국 운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운임은 더 이상 예측 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팬데믹 이후 세계 공급망은 심각하게 흔들렸고,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운임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들쭉날쭉해졌다.
2025년 상반기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해상 운임은 팬데믹 시기의 최고점을 찍은 이후 급락했다. 아시아-미국 서안 노선의 40피트 컨테이너 기준 운임은 한때 2만 달러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약 2,4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동해안 노선 역시 3,500달러 안팎으로, 고점 대비 절반 수준이다. 미국 내 트럭 스팟 운임도 하락세가 지속되며 마일당 평균 2.05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이처럼 운임의 급격한 변동은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위협적이다. 얼마 전까지 이익을 내던 조건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적자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입 중심의 제조업체나 무역업체는 운송비의 작은 변화에도 수익성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이로 인해 최근 물류업계에서는 운임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대응 전략으로 ‘장기계약’이 부상하고 있다.
장기계약은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운임을 고정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계약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선사와 화주 모두 이를 선호하는 추세다. 이유는 분명하다. 스팟 운임은 그날그날 시장 상황에 따라 급변하지만, 계약 운임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예측 가능성과 비용 통제의 이점을 제공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티스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물류 기업들의 평균 계약 운임 비중은 57%에 달해 스팟 운임 비중을 앞질렀다. 불과 3년 전인 2022년에는 스팟 운임 비중이 60%를 넘었으나, 단기간 내에 흐름이 역전된 것이다.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다소 높은 단가를 감수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운송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계약 운임을 선호하고 있다.
국내 대형 수출입 기업 B사는 주요 해운사와 반기 단위로 운임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B사 물류전략 담당자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일정한 비용으로 운송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가격보다 예측 가능성이 기업 운영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들은 장기계약 외에도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물류 플랫폼인 C.H.로빈슨과 플렉스포트는 자사 플랫폼을 통해 과거 운임 데이터와 글로벌 수요 예측, 유가, 항로별 혼잡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주는 시뮬레이션 도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기업 고객들은 스팟과 계약 운임 간의 수익 시나리오를 비교하고, 각 노선별 맞춤형 운송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일부 기업은 금융 기법도 도입하고 있다. 운임 파생상품을 활용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운임이 상승할 경우 손실을 보전받는 ‘헤지 전략’을 운영 중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초기 단계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대형 화주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기업들은 장기계약 확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파생상품 활용, 공급망 다변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확실한 운임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해상 운송뿐만 아니라 항공, 철도, 복합 운송 등 다양한 수단을 혼합하며 특정 항로나 선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도 병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라고 진단한다. 한국물류학회 관계자는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기후 문제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장기화되고 있어, 기업들이 더 이상 단기 시세에만 의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 계약 구조는 단순한 비용 전략을 넘어, 공급망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운임의 계약화는 현재 물류시장에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스팟 운임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호됐지만, 지금은 예측 불가능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 되고 있다. 고정 단가 계약은 화주에게는 보험이 되고, 선사에게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 수단이 된다.
현재 물류 업계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표현은 “운임은 출렁여도, 계약은 버팀목이 된다”는 말이다. 혼란한 시장 속에서 장기계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류 기업들은 이제 단기 이익보다 장기 생존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략의 중심에는 분명히 ‘계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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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계약이 적용된 물류창고 내부. 예측 가능한 공급망 운영은 불안정한 시장에서 기업의 핵심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