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이라크가 2025년 4월 1일부터 TIR 체계를 발효했다”고 발표했다. TIR(Transports Internationaux Routiers)은 하나의 통관 보증만으로 여러 국경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국제 제도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차량당 화물 검사와 세관 절차가 대폭 간소화되어 육상 운송의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제도로운송동맹(IRU)은 바그다드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서 “이라크의 TIR 가동은 중동 지역 물류 연결성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이라크를 경유하는 국제 운송 노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터키에서 쿠웨이트로 향하는 첫 TIR 운송 트럭이 이라크를 통과해 단 4일 만에 도착한 사례가 보고됐다. IRU는 “이라크를 통과한 첫 육상 운송 루트가 정상 작동하면서 유럽~페르시아만을 잇는 시간 단축 효과가 입증됐다”고 전했다. 기존 해상 운송 대비 절반 이하의 기간으로 단축된 셈이다.

이라크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라크-유럽 개발도로(Iraq–Europe Development Road)’ 프로젝트를 병행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남부 그랜드 파우 항(Grand Faw Port)에서 출발해 도로와 철도망을 따라 터키 국경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약 1,200km 구간의 초대형 인프라 프로젝트다. 총 투자 규모는 약 170억 달러(17 billion USD)로 추산된다.

이라크·터키·카타르·UAE 등 4개국은 이미 다자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바그다드 정부는 해당 사업 전담 기구 설립과 투자 절차 간소화를 추진 중이다. 개발도로의 남단 기점인 그랜드 파우 항만 역시 핵심 축으로, 완공 시 중동 최대 항만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월드뱅크가 지원하는 9억3천만 달러 규모의 철도 현대화 사업도 병행되고 있어 항만·도로·철도·국경 통관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합 운송 체계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는 여전히 정치적 불안정, 보안 리스크, 인프라 미비, 재원 조달 불확실성 등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 무장 세력의 활동, 국경 통제 불균형, 주변국 간 외교 갈등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특히 TIR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 발효를 넘어 각국의 세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야 하며, 전자 통관(eTIR) 체계의 안정적 운용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제 물류 전문가들은 이번 이라크의 행보를 ‘위험 속의 기회’로 본다. 과거 단절된 내륙 통로로 인식되던 이라크가 향후 유럽-중동 간 육상 물류의 ‘시간 절반, 비용 절감’ 루트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터키, 이란, 사우디, UAE 등 주변국이 이미 물류 통합 전략을 추진 중이어서 이라크가 이들의 교차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IRU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라크 내 TIR 운송 건수가 2025년 들어 급증했다”며 “이제 이라크는 더 이상 통과 불가 지역이 아니라 통과 핵심 구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동의 지정학적 복잡성과 국제 물류 리스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라크의 개발도로 프로젝트는 향후 10년간 글로벌 육상 운송의 실험장이자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 출처

UNECE (2025.04) Activation of TIR System in Iraq

IRU (2025) Iraq Launches TIR System / Turkiye–Kuwait Corridor Operational

Supply Chain Digital (2025) Iraq Development Road: Global Trade Impact

Zawya (2025) Iraq to Present Development Road Study to Gulf Partners and Turkey

AP News (2025) Iraq Railway Modernization Project Appro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