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미국 정부는 조용하지만 깊은 파장을 일으킬 정책을 발표했다. 그동안 해외에서 하루 800달러 이하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면세와 간소화된 통관을 허용했던 ‘de minimis’ 제도를 중국과 홍콩발 수입품에 한해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단순한 통관 규칙의 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조치는 전 세계 전자상거래 구조를 흔드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de minimis’는 미국 세관이 정한 소액 수입품 무관세 제도로, 1990년대부터 시행되어 왔으며 2016년에는 기준 금액이 2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되며 해외직구와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의 급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소비자는 저렴한 비용과 간편한 수령이라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고, 해외 판매자들에게는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오히려 미국 내 생산자와 유통업체들에게는 불공정한 경쟁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특히 중국산 저가 상품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국내 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을 중심으로 제도 축소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번 정책 변화는 이러한 흐름이 제도화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조치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무엇보다 소비자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면세로 구매하던 패션, 전자기기, 생활용품 등에 세금과 통관 수수료가 부과되면서 가격이 상승하고, 통관 절차가 복잡해짐에 따라 배송 지연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소액 직구의 장점이 줄어들면서, 국내 제품이나 현지 유통망을 통한 구매로 수요가 이동할 가능성도 크다.
판매자와 플랫폼 역시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Temu, Shein 등 중국 기반 플랫폼들은 이미 미국 내 풀필먼트 센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으며, 국내 발송을 통한 관세 회피, 광고 축소, 상품군 재편 등도 병행되고 있다. 창고 및 물류 네트워크의 재배치가 동시에 진행되는 셈이다.
세관 당국에도 과제가 적지 않다. 미국 세관국(CBP)에 따르면 하루 평균 수백만 건에 달하는 소액 상품 통관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인력 확충과 디지털 통관 시스템 개편이 불가피하다. 향후에는 단순한 가격 기준이 아니라 상품의 상세 정보, 코드, 판매자 정보, 스크리닝 자료 등 복합적인 데이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강화될 예정이다.
정책의 목적은 단순히 세수를 늘리려는 데 있지 않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세수 확보는 물론 자국 제조업 보호, 통관 보안 강화, 불법 물품 유입 차단 등 다양한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글로벌 무역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통관 데이터와 수입 경로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명확하다.
다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한다. 저소득 소비자일수록 해외 직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구매 비용 상승과 접근성 저하로 인한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이커머스 기반 스타트업이나 중소 판매자들도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물류 전략과 비용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통관 병목 현상과 물류망 혼선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변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 역시 유사한 제도의 폐지를 검토 중이며, 글로벌 물류 생태계 전반의 재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제 누구도 '800달러의 마법'에만 의존해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는 존재한다. 자동화 통관, 창고 분산화, 원산지 추적, AI 기반 물류 관리 등 물류 혁신 기술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에게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관세, 보안, 환경 기준까지 고려한 다층적 물류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미국의 ‘de minimis’ 제도 축소는 단순한 수입 규정 변경이 아니다. 이는 전 세계 유통과 물류, 전자상거래의 질서를 새롭게 구성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소비자, 기업, 정책 당국 모두가 이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무역 생태계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연함, 속도, 그리고 전략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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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백만 건, de minimis 폐지 이후 통관을 기다리는 국제 소포들 |